[메모의 역사 02] 종이 없을 땐 어디에 썼을까? 돌부터 가죽까지 고대의 눈물겨운 기록 생존기

 안녕하세요! 세상의 모든 흥미로운 비밀을 시리즈로 탈탈 털어내는 1인 지식 토크쇼, 'Pappang Show'의 작가 파빵(Pappang)입니다. 우리 일상의 호기심에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독자분들이 커피 한 잔과 함께 5분 만에 정주행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매일 아침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메모를 남기고, 굴러다니는 A4 용지에 아무렇지 않게 낙서를 하는 우리에게 '기록'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상입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종이가 생기기 전,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헤어지자는 연애 편지나 오늘 마트에서 살 장보기 목록을 어디에 적었을까?"

저도 처음에 블로그를 시작할 때 노트북 화면이 먹통이 되면 대안이 없어서 쩔쩔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대인들의 상황에 비하면 이건 투정에 불과하더라고요. 당시 인류는 주변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에 글을 새기며 눈물겨운 기록 생존기를 펼쳤습니다. 오늘은 인류가 종이를 손에 쥐기 전, 세상을 바꾼 위대한 (그리고 조금은 황당한) 기록 재료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탈탈 털어보겠습니다!


1. 쏟아진 커피에 녹아버린 영수증? 메소포타미아의 축축한 점토판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사람들은 강가에서 아주 흔하게 뒹구는 '흙'에 주목했습니다. 찰흙을 조물조물 빚어서 넓적한 판을 만든 뒤, 갈대 끝을 뾰족하게 깎아 꾹꾹 눌러 글자를 새긴 거죠. 이게 바로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들어본 '점토판'입니다.

사실 제가 이 점토판으로 글을 쓴 고대 회계사였다면 매일 밤 손목 터널 증후군에 시달렸을 것 같습니다. 굳기 전에 빨리 써야 하니 마감 압박이 장난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게다가 오타가 나면 물을 살짝 발라 지우개처럼 문질러야 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점토판에 적힌 내용들입니다. 거창한 문학 작품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90% 이상이 "보리 30자루 거래 완료", "세금 미납자 명단" 같은 아주 지극히 현실적인 영수증과 계약서였습니다. 햇볕에 바짝 말리거나 불에 구워두면 수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으니, 어쩌면 고대의 디스크 드라이브였던 셈입니다. 다만 친구에게 "오늘 저녁 뭐 먹어?"라고 보낼 문자 한 통을 점토판에 새겨 배달하려면, 아마 집배원분의 등 근육이 파괴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2. 왕의 허세는 영원히, 하지만 내 반성문은? 무겁고 위대한 돌의 역사

점토판보다 더 확실하고 영구적인 보존법을 원했던 권력자들은 결국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재료를 찾아냅니다. 바로 '돌'입니다. 왕이 전쟁에서 이겼다거나, 새로운 법을 만들었을 때 석판이나 비석에 웅장하게 글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돌에 글씨 써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예전에 조그만 조약돌에 이니셜 하나 새기려다가 손곳과 망치만 망가뜨리고 손가락을 찧은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고대에도 돌에 글을 새기는 건 엄청난 국가적 노동이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돌은 아무나 쓸 수 없는 귀족 중의 귀족 매체였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로제타석이나 우리나라의 광개토대왕릉비처럼 "이건 절대 인류가 잊지 말아야 해!" 하는 어마어마한 역사적 사건들만 돌 위에 살아남을 자격을 얻었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장점은 있지만,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일상적인 소통에는 쓰이기 힘들었죠.


3. 책 한 권 읽으려면 헬스클럽 등록 필수? 동양을 지배한 대나무 '죽간'

그렇다면 동양에서는 어땠을까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는 주변에 흔하고 곧게 잘 자라는 대나무와 나무를 쪼개어 사용했습니다. 대나무를 얇게 저민 것을 '죽간(竹簡)', 일반 나무 조각을 '목간(木簡)'이라고 부릅니다.

이 얇은 대나무 조각에 먹으로 글씨를 쓴 뒤, 가죽끈으로 엮으면 드디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책(冊)'의 형태가 완성됩니다. 한자 '책 책(冊)' 자 모양이 바로 이 죽간을 실로 엮어놓은 모습을 그대로 본뜬 글자라는 사실, 정말 절묘하지 않나요?

하지만 이 편리해 보이는 죽간에도 엄청난 반전이 있었습니다. 바로 어마어마한 '무게'였습니다. 유래가 깊은 지식인을 뜻하는 '수레 다섯 대에 가득 찰 정도의 책을 읽었다'는 뜻의 수차오거(Five carts of books)라는 말은, 사실 지식이 많다는 뜻도 되지만 죽간이 그만큼 무거웠다는 물리적인 고충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한나라의 무제에게 올린 한 관료의 상소문은 대나무 조각 3,000개가 넘어, 장정 두 명이 겨우 들고 이동했다고 하니 책 한 권 읽으려면 강인한 체력이 필수였던 시대였습니다.


4. 나일강의 선물 파피루스 vs 황소 한 마리가 책 한 권이 되는 양피지

지중해와 유럽 세계는 조금 더 가볍고 혁신적인 재료를 찾아 나섰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가에 널린 파피루스 풀의 줄기를 얇게 찢어 격자무늬로 겹친 뒤, 쾅쾅 두드리고 말려서 '파피루스'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종이(Paper)라는 단어의 진짜 조상님이죠. 가볍고 돌돌 말아서 두루마리로 보관하기 좋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습기에 쥐약이었다는 점입니다. 건조한 이집트에서는 수천 년을 버텼지만, 습한 유럽으로 건너가면 금방 곰팡이가 피고 삭아 없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세 유럽이 선택한 최종 병기가 바로 동물의 가죽을 극한으로 늘려 만든 '양피지'입니다. 양이나 염소 가죽을 기름기에 절이고 긁어내어 만든 이 가죽 종이는 앞뒷면 모두 글을 쓸 수 있고 찢어지지 않는 엄청난 내구성을 자랑했습니다.

다만 비용이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성경 책 한 권을 양피지로 만들려면 무려 수백 마리의 양이나 황소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가죽을 얻기 위해 멀쩡한 가축을 잡아야 했으니, 책 한 권 값이 귀한 집 한 채 값과 맞먹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책 도둑을 저주하는 무시무시한 문구가 중세 책 표지에 단골로 등장했던 이유가 격하게 공감이 가기도 합니다.


💡 맺음말 : 가볍고 흔한 종이가 가져온 지식의 대폭발

돌에서 점토, 대나무에서 가축의 가죽까지. 인류는 자신들이 처한 자연환경 속에서 가장 영리한 방법으로 흔적을 남겨왔습니다. 하지만 무겁거나, 비싸거나, 쉽게 썩는 치명적인 한계들이 늘 지식의 확산을 가로막고 있었죠.

이 모든 눈물겨운 불편함을 단 한 방에 해결하며 인류의 문명을 완전히 뒤바꾼 혁명이 일어납니다. 바로 중국에서 들려온 '종이의 발명' 소식이었습니다. 가볍고, 싸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이 하얗고 부드러운 재료는 어떻게 전 세계로 퍼져나가 지식의 대폭발을 일으켰을까요?

그 흥미진진한 종이의 역전극은 다음 에피소드에서 본격적으로 탈탈 털어보겠습니다. 커피 한 잔 더 채워두시고, 다음 편에서 만나요!

◀ [메모의 역사 01] 인류는 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을까? 메모 문화의 시작과 발전 과정 (바로가기)

▶ [메모의 역사 03] 넝마 조각이 만든 기적, 채륜의 종이가 바꾼 지식 대폭발 (다음 편을 기대하세요.)

※ 본 시리즈는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학술 자료 및 고대 기록 매체 연구소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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